80만 원. 틀이 굵은 캔버스와 대용량 물감 그리고 호수 높은 붓들을 사기
시작한 것은 모두 은행 빚 80만 원의 때문이었다.
은행에서 독촉 전화가 걸려오고 나는 80만 원을 만들기 위해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고 누군가에게 애걸복걸하고 다시 시름에 잠기고......
이렇게 말하고 나니 내 가난의 시계가 그 무렵 멈춘 것처럼 느껴지지만,
빚더미는 지금도 일정한 부피를 유지할 뿐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빚을 갚기 위해 그림을 팔겠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내 머릿속이다. 그림이라는 게 만들어 놓으면 팔리는 공산품도 아닌데
나는 왜 그런 방법을 생각했을까, 아무튼 나는 바닷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찌가 움직이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림을 그리고, 그린 그림을 싸 들고
홍대 일대의 가게를 돌며 전시를 시작했다. 카페에서 시작해 선술집 그리고
호프집, 도서관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시를 했고 그림 판매에 열을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낚싯대 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15만원짜리 그림이 팔린 것이다.
그때부터 종종 그림이 팔리면 찌가 아니라 내 몸 어떤 근육이 파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신기했다. 나를 돕기 위해 그림을 산 몇몇 지인들을 제외하면 모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나는 물건을 팔고 누군가는 필요에 의해 대가를 지급한 것이니
코가 땅에 닿게 감사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80만원 때문에 짜부라든 나의 마음을 부풀게 해준 고마운 인연들이다.
'때문에'를 '덕분에'로 여기라는 말이 있다. 좋아하는 글귀라고 말하긴 어렵다.
‘때문’과 ‘덕분’의 사전적 의미를 헷갈리지는 않지만 가끔 그 사용이 헷갈릴 때는 있다.
때문이든 덕분이든 나를 힘들게 한 80만 원이 지금은 고맙게 느껴진다.
30대 초반, 무더운 어느 여름날 나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던 80만원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그림을 판돈으로 혼자 소책자를 만들고 출판사의 전화를 기다리며 30대를 보냈다.
여기까지 왔다, 라고 썼지만 '여기'가 무엇을 의미하는 잘 모르겠다.
마음씨 넉넉한 편집자 친구의 격려로 새로운 시도를 담은 책을 준비하는
지금 이 시점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래, 이게 다 80만 원 덕분이지.
*고정순의 <안녕하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