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806수 그대가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은?
그대아침
2025.08.06
조회 144
따끈따끈한 밤식빵을 두 손으로 잡고 반으로 갈라,
그 안에 있는 식빵과 밤을 콕콕 파먹을 때 느껴지는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있다.
밤식빵은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한 하나의 음식이라 애써 다른 맛을 곁들이지 않는다.
입맛이 없거나 늦은 밤 출출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것도 이 밤식빵이다.
소파에 앉아 밤식빵을 야금야금 뜯어 먹으면 세상에 이만큼 맛있는 음식이 없을 것만 같다.

내가 이렇게 밤식빵을 좋아하게 된 이유에는 아빠의 공이 크다.
늦은 저녁, 술을 잔뜩 마시고 귀가하는 아빠가 통닭이나 아이스크림, 단팥빵처럼
자신들의 입맛을 반영한 음식을 한가득 사 오는 모습이다.
미디어에서 많이 접해 익숙한 모습이다. 실제로도 많은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귀갓길에 아이들의 입맛은 반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취향으로
가득 채운 군것질을 사들고 갈 것이다.
우리 아빠도 그런 사람이다. 주종목은 빵, 그것도 밤식빵.
아빠가 친구를 만나는 날, 특히나 전화 통화에서부터 혀가 잔뜩 꼬인 그런 날에
우리 가족은 아빠가 집에 오자마자 아빠의 손부터 확인했다.
그런 날은 여지없이 빵이 가득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고,
아주 가끔 봉투도 없이 밤식빵만 덩그러니 손에 쥐고 올 때도 있었다.
가족끼리 외식을 할 때도 예외는 아니다. 술에 달콤하게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빠는 빵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우리에게 '다 골라!'라고 말을 내던지며
본인은 밤식빵 하나를 집어든다.

내가 밤식빵을 먹게 된 계기도, 그리고 좋아하게 된 이유도 순전히 아빠 탓이다.
자신이 사온 밤식빵이 며칠 내내 누가 손도 대지 않은 채로 놓여 있으면 서운해할 것 같아서,
그런 날은 종일 끼니를 밤식빵으로 채웠고 그렇게 밤식빵의 맛을 알아갔으니
아빠의 탓이 아닐 리 없다. 여느 때처럼 아빠와 외식을 한 뒤 빵집에 들러
밤식빵을 사서 돌아가던 날, 언니와 나는 손에 밤식빵을 든 채 걸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 우리 큰일 났다. 우리 늙어서도 밤식빵만 보면 아빠 생각나서 울겠다."
특정 사람이 생각나는 음식은 이래서 언제나 무섭지만, 그래도 그때쯤에는
의연하게 밤식빵에 든 밤을 콕콕 빼먹으며 가장 행복했던 때를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산문집 <요즘 사는 맛>에 수록된 
천선란의 ‘밤식빵의 밤처럼 그리움이 콕콕’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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