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트럭을 세워두고 과일을 파는 아저씨가 있다.
단감이 세줄에 오천 원, 방울토마토가 한 소쿠리에 오천 원,
오렌지는 스무개에 만원이다.
오렌지가 스무 개에 만원. 작은 현수막에 꽉 차는 큰 글씨로 써서 붙여놨다.
세상에나, 오렌지가 스무 개에 만 원이라니... 트럭으로 향했다.
셈을 치르고, 팔목에 검은 봉지를 끼워 손을 주머니에 찌르다 문득,
길 위에서 아저씨의 갈라지고 터진 손이 받아들던 만 원짜리를 떠올린다.
그 만 원짜리를 들고 아저씨가 집으로 돌아가면, 매연과 소음의 거리에서
꽃샘추위를 겪고 돌아온 그를 위해 된장찌개 자박자박 끓여놓고 기다릴
아내가 있었음 참 좋겠다.
아빠가 남겨온 단감을 아그작 아그작 베어먹을 아가들이 있었음 참 좋겠다.
그의 고단한 귀가는 환호였으면 한다. 그의 저녁은 웃음이었으면 한다.
그의 터진 손은 그의 열매이자 긍지였으면 한다.
우체국 옆길에 주욱 늘어선 채소장수 아줌마들, 과일장수 아줌마들,
그 아줌마들이 집에 돌아가면 그들을 기다리는 남편들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들의 팔다리를 주물러줄 남편들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
남편은 착실한 금액을 따박따박 받아오는 일터가 있어서,
그녀들의 벌이가 들쭉날쭉해도 아이들 학비 걱정은 없었으면 좋겠다.
비가 오는 날에는 맘 편히 노점 일을 쉬었으면 좋겠다.
그녀들은 그랬으면 좋겠다.
과일 트럭 옆을 지나는 차들은 "프촤아아아아" 소리를 내며 달린다.
그 소리는 파도의 소리다. 망망대해를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파도의 소리다.
일상의 소리다.
파도의 소리는 철썩철썩이 아니다.
*윤혜선의 <소리사전>에서 따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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