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반짇고리에는 이십 년이 족히 넘은 실꾸리가 몇 개 있다.
이십여 년 전, 결혼할 무렵에 할머니가 시골 장에 가서 실을 사다가 직접 감아 준 실몽당이들이다.
눈부신 하얀색에서 엷은 목련빛 아이보리 실까지 자세히 보면
실의 굵기와 질감,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실이 감긴 각도와 방향,
탄력도 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래서 더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실꾸리들이다.
이불도 꿰매고 양말도 깁고 단추도 달라고 바늘도 각양각색으로 갖추어 주었다.
그 실몽당이들은 지금도 그때보다 거의 작아지지 않은 채로 할머니가 감아놓은 모양 그대로 있다.
왜냐하면 어느 때부턴가 할머니의 실들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실들을 다 써버리면 할머니와의 끈이 영영 사라져버린 것 같을 듯해서.
어쩌다 바느질을 할 일이 생겨서 반짇고리를 열 때마다
나는 할머니의 실꾸리들을 나란히 펼쳐놓고 오래도록 바라보곤 한다.
긴 실이 모두 할머니의 손가락 사이를 지나 왔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본다.
손녀인 내게 유난히 사랑이 깊었던 할머니의 마음이
아직도 거기에 풀리지 않은 채로 단단히 감겨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따뜻하게 슬퍼지고 만다.
평생 동안 우리를 위한 할머니의 기도는 남들 눈에도 할머니의 눈에 보이는 것처럼
꽃처럼 예쁘게만 보이도록 비는 것이었다.
잊고 살다가도 실들만 보면 저절로 할머니와의 오랜 추억과 이야기들이
스르르 풀려나오는 마법의 실꾸리들.
세월이 갈수록 그 실꾸리들에는 나만이 아는 냄새가 짙어가는 듯하다.
특별할 것 없는 물건 하나가 이토록 마음을 끈다. 그건 그 물건속에
생(生)이 응결되어 있기 때문이고, 애틋한 한 사람의 기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함께 보냈던 과거의 시간을 입증해주고 함께 했던 사람들과 나를
여전히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준다. 낡고 오래된 물건이 좋은 이유는
본래 훌륭해서가 아니라 이런 깊은 유대감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물건들 안에 들어 있는 과거와 아름다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이운진의 <당신은 어떻게 사랑을 떠날 것인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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