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028화 '엄마'라는 이름의 도피처
그대아침
20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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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들어서면 언제나 군기가 바짝 든 책상이 각을 잡고 나를 반긴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는 날에는 바짝 날이 선 책상에 베어 몸도 마음도 상처를 입는다.
일주일 혹은 그 이상을 나보다 앞서 살아가는 일정표가 책상에 앉기 무섭게
오늘의 일과를 차례로 읊는다. 1번부터 8번. 오전을 달려 점심을 뛰어넘고 어느새 오후를 맞이한다.
하루는 24시간뿐이고 고작 8시간 안에 8번 업무까지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에 억울한 마음이 든다.
빡빡한 일정에 치여 입에서 작은 한숨이라도 새어 나오는 날에는
이대로 살지 않으면 뒤처지는 거 몰라? 라는 말로 채찍질을 일삼는다. 

이럴 때는 매일 밤 침대에 몸의 피로를 뉘듯 마음에도 푹신한 침대가 필요함을 느낀다.
사람마다 마음의 병을 쏟아내는 방법이 모두 달라서 마음을 위한 침대의 모양도 저마다 다 다르다.
누군가는 사람들과 수다를 떨면서 마음의 병을 덜어내지만 누군가는 운동으로,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며 마음의 병을 떠나보낸다. 나라는 사람은 이불을 싸매고 누워
혼자만의 동굴로 들어가는 타입이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동굴 밖에 서서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부른다.
"치킨 사갈까?"
아니, 라는 퉁명스러운 대답에도 치킨은 엄마 손을 잡고 현관을 넘고
이따금 치킨이 찐빵이나 바나나 다발이 돼 우리 집을 제 발로 찾아온다. 

"집에서는 참지 않아도 돼."
엄마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청개구리가 되어 아무렇지 않은 듯 털고 일어난다.
요즘은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마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와
조용히 엄마 품으로 가는 상상을 한다. 
아주 어릴 때처럼 엄마 배를 베고 누워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일.
사진 앨범을 꺼내지 않아도 어느새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너는 앞으로 뭘 해야 한다, 기대에 가득 차 희망을 가장한 내일을 선고하는 일보다
우리 그때 좋았었지, 라며 과거의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사이.
엄마라는 존재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울음이 가득한 슬럼프를 이겨낼 수 있는
나만의 유일한 도피처다.


*김진빈의 <우리 엄마의 이름은 엄마?>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