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021화 끝에 가닿는 순간 또 다른 길을 만난다
그대아침
202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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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해를 닮은 전구가 선명히 사람들을 가두던 어느 저녁 술집.
여행에서 막 돌아와 다음 여행은 또 언제일까 싶어 아쉬운 마음으로 잔을 들던 시간.
몇 번 본 적은 없지만 늘 신중했던 그가 진중한 어투로 느리게 입을 열었다.
"부탁이 하나 있어."
"뭔데요? 어려운 건 하지 마요. 알죠? 나 소심해서 거절 잘 못하는 거?"
"만약, 미국에 간다면 서부 101번 해안 도로를 꼭 한번 가봐.
그 길은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답고 처절한 길이야. 너도 그 길에 서면 나와 같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이쿠! 그게 부탁이에요? 당장 계획은 없지만 만약 그곳에 가게 되면 걸어서라도 다녀오지요."

101번 도로는 아주 낡고 오래된 길이다. 2,478km.
가늠 안 되는 아득한 길이의 이 길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달렸을까?
무심하고 심심한 길은 때로 커다란 도시를 품었다가 때로 황량한 길을 내놓기도 했다.
이대로 계속 운전만 한다면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미치지 않았다.
아니, 허황된 풍경을 만날 때면 잠시 그 풍경에 미치기도 했던 것 같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누군가는 산을 오르며 자신을 만난다고 했고,
어떤 어부는 망망대해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고도 했다.
나 또한 길 위에서 다양한 내 모습을 보았다.
그냥 우리가, 내가 당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달려야 했을 그 길 위에서 나는 자주 나를 만났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사이로 문득 지나간 일이 겹쳐졌고,
그럴 때마다 나는 빤하게 펼쳐진 길 위에서 길을 잃은 듯하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것도 하나의 길고 긴 길을 걷는 것이라면 나는 지금 어디쯤 걷고 있을까?
지금껏 달려온 길을 믿고 끝까지 갈 것인가? 언제나 길은 명징하지만,
우리는 그 길 위에서 무엇을 만날지 모른 채 희미한 풍경속으로 터벅터벅 걸어야 할 뿐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걸음이 쌓여 길 끝에 닿았을 때 우리는 얼마나 아득한 여행을 했겠는가.
굳은살이 박이고 햇볕에 그을리며 그냥 걸었을 뿐인데 우리는 또 그만큼을 산 것이다.
내가 믿는 것에 대해 끝까지 가보는 일.
그렇게 끝에 가닿는 순간 다시 펼쳐질 또 다른 길을 만나는 것이다. 

*변종모의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