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020월 나무도 몸을 흔든다, 더 잘 서 있으려고.
그대아침
2025.10.20
조회 213
청설모가 메타세쿼이아를 잽싸게 타고 오르며 '고고고고' 소리쳤다.
나를 알아채고 경계하는 날카로운 고음이 숲에 울려 퍼지는 걸 들으며
나는 걸음을 멈춘 채 청설모를 눈으로 좇았다.
놀랍게도 꽤 높은 가지의 청설모가 나를 정확히 내려다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오가는 사람드문 이 숲에서 나를 알아봐준 녀석. 참으로 고맙다.
일에 지치고 외로워서 혼자 올라온 사람을 빙긋 웃게 만드니.

요즘 문득문득 서러워지곤 했다. 잦은 강연에다 이런저런 인터뷰, 어떤 행사의 부분을 담당하느라
쫓기듯 지내는 것도 버겁고, 아무리 경제적인 동선을 고려해서 일정을 잡아도
녹초가 된 몸이 회복되지 않으니 힘겹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혼란스러워서. 
평생 글 쓰며 책 읽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고, 어떤 강연이나 인터뷰는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았나.
그런데도 왜 이렇게 홀로 버려진 듯 서러울 때가 많고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허전한지 모를 일이다.
광화문 네거리의 한무리 사람들 틈에 끼어서 찬 바람맞고서 있는 것처럼.

한발 한발 언덕을 오르며, 나는 이렇게 혼자서 간다, 내 발바닥이 디딘 여기가 내 현실이다,
마음 다독이며 올라온 사람을 요란하게 맞아준 청설모 그 재빠른 녀석을 바라보는데
늘씬하게 뻗은 메타세쿼이아들의 푸르른 머리채가 눈에 들어왔다.
서로 어우러져 부드러운 곡선으로 하늘을 모자이크 하고 있는 풍경.
숲만큼 질서를 잘 유지하는 사회가 또 있을까.
갑자기 메타세쿼이아들이 부르르 몸을 떨어댔다.
마치 스스로 용틀임하는 것처럼 보인 게 착각인지 몰라도
나는 죽은 이파리와 잔가지가 떨어져 내리는 걸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청진기를 나무에 대고 귀를 기울이면 물관이 꿀꺽 물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던
어떤 이의 말이 떠올랐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 나무도 몸을 흔드는구나. 바람을 빌려 스스로 몸을 흔들고 있어.
죽은 것들을 버리기 위해서 더 잘 서 있으려고.

내가 왜 혼자서라도 산에 오르고 싶어지는지 오늘에서야 깨닫는다. 
내 한 걸음의 소중함을 알려준 산이 이제는 혼자서라도 스스로를 추스를 줄 알아야 한다고
속삭이는 것 같다. 외로움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그걸 알게 돼서 참 다행이다. 

*황선미의 <가끔, 오늘이 참 놀라워서>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