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구부려 조아리느니 분질러지고 만다.
땡볕을 버티고 바람을 견뎌서일까. 국수는 흙 같고 풀 같고 나무 같다.
반듯한 일직선의 메마름, 국수가 품은 한 방향의 나아감에는 그 어떤 타협도 없다.
땀과 시간으로만 빚을 수 있는 반듯한 눈물이라서,
잘 말린 국수에 코를 대면 가을걷이를 마친 들녘의 흙냄새가 난다.
흙으로 돌아간 아비의 담배 냄새와 하얗게 시든 어미의 머리카락 냄새가 난다.
낮을 가리지 않는다. 사람을 가려서 눕거나 풀어지지도 않는다.
모진 세상을 악다물고 태어나서일까. 라면은 밥 같고 술 같고 애인 같다.
틀에 맞춰 찍어낸 아찔함, 라면이 품은 비틀린 운명에는 그 어떤 자유도 없다.
상술과 기계로만 찍어 낼 수 있는 굴곡진 눈물이라서,
끓어오르는 라면에 귀를 대면 바르르 떠는 세상살이의 온갖 설움이 들린다.
국수는 부지런한 것들이 들판에 뿌린 숨소리를 닮았다.
숨을 머금고 알곡을 잉태한 흙의 마음씨를 닮았다.
머금었다 피어나는 흙을 닮아서, 국수는 때를 기다리며 침묵할 줄 안다.
팔팔 끓는 물에 온몸을 던질 때까지 국수는 반듯하게 입을 다물고 세상과 단절한다.
비를 만난 땅에 생명이 움트듯 물을 만난 국수가 살아 꿈틀댄다.
라면은 가난한 것들이 도시에 뿌린 땀 냄새를 닮았다.
꿈을 머금고 단칸 셋방에 둥지를 튼 어린 것들을 닮았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가여운 것들을 닮아서, 라면은 누구에게나 기꺼이 가슴을
연다. 굴곡지고 비틀린 속살을 뜨거운 불길에 데워 굶주린 하루를 달랜다.
노동에 지치고 멸시에 멍든 가슴에 밥이 되고 술이 되어 안긴다.
빨갛게 풀어진 국물로 다가가서 애인의 품처럼 뜨겁게 녹아내린다.
라면은 생김새와 돈벌이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삶아진 국수의 진면목은 찬물에 다시 씻어내면서 드러난다.
구부려 조아리느니 분질러지고 말던 국수는 온데간데없고
젓가락 따라 휘감기는 맛깔스런 국수만 번듯하다.
참고 견뎌야 비로소살아나는 것, 그것이 라면에게는 없는 국수의 참맛이다.
그렇다고 국수만을 쫓으며 세상을 살 순 없다. 참고 견디는 것이
숙명 같은 자들에게 기꺼이 가슴을 열고 끓어 올라줄 수 있는 건
국수가 아니라 라면이다. 국수에게는 없는 절박함이 라면에게는 있다.
지금도 어디선가 물이 끓고 있다.
*고향갑의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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