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821목 잘못되었다 싶을 때는 미련 없이 처음으로~
그대아침
2025.08.21
조회 203
가로 25cm, 높이 20cm, 폭 20cm. 이탈리아산 레드와인 색감의 가죽. 
구조는 아주 아주 단순하게.
3분의 2쯤 만들었다. 손잡이만 꿰매면 끝난다.
손잡이를 몸 판에 달려고 하니 비뚤어진 바늘땀이 보였다.
겨우 한 땀 잘못된 바느질.
그 땀은 마치 모두 우향우 하고 있는데 혼자만 좌향좌를 하고 있는 얼빠진 군인 같았다. 
손잡이를 다시 만들어 바느질하면 쉽게 해결될 일이다. 그런데 꾀가 났다. 
다시 손잡이를 만들려고 하니 그동안의 시간도 욱신거리는 어깨 관절도 
침침해지는 눈도 왠지 애처롭다.

잘못된 바느질을 살짝 가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가죽을 덧대서 마치
원래 디자인이 그런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꿰매면 될 것 같았다.
가죽을 덧대고 보니 가방 모양이 영 시원치 않았다. 다시 가죽을 재단해서 수정을 했지만,
수정은 계속 수정을 낳을 뿐. 아예 처음부터 손잡이를 다시 만들었다면,
오늘 하루의 모든 일들이 헛되지는 않았으리라.
잔머리가 문제였다. 가방을 만드는 공정이 너무 많이 진행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무언가를 덧댄다고 해결될 일이, 부분을 수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너무 멀리 와버렸기에 처음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처음으로 돌아가기 싫어 머뭇거리며 갈팡질팡하다 결국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잘못되면 처음으로 돌아가야 말끔하다. 책상을 깨끗이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책상 위에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는 것이듯이
처음으로, 없음으로, 다시,
다시 돌아가 또다시 시작하는 게 가장 깔끔한 해결책이다.
남들은 눈치채지 못할 수 있겠으나 만든 사람의 눈에는 수정된 부분이 곪고 덧나
흉터가 남은 상처처럼 또렷이 자리한다. 내 머릿속 그 물건의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너무 멀리 왔어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수정한 부분은, 덧댄 부분은. 그 물건을 볼 때마다 계속 떠오른다.
저게 아니었는데, 저 모습이 아니었는데, 저 길이 아니었는데……
아차, 잘못되었다 싶을 때는 미련 없이, 주저 없이,
처음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리. 그것이 가장 빠르고 아름다운 길이므로. 

*이승원의 <공방예찬>중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