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709수 슬픔은 울음에서 소리를 훔쳐내는 일
그대아침
2025.07.09
조회 228
슬픔이 하는 일 / 이영광

슬픔은 도적처럼 다녀간다
잡을 수가 없다
몸이 끓인 불,
울음이 꽉 눌러 터뜨리려 하면
어디론가 빠져 달아나버린다
뒤늦은 몸이 한참을 젓다 시든다
슬픔은 눈에 비친 것보다는 늘
더 가까이 있지만,
깨질 듯 오래 웃고 난 다음이나
까맣게 저를 잊은 어느 황혼,
방심한 고요의 끝물에도
눈가에 슬쩍 눈물을 묻혀두고는
어느 결에 사라지고 없다
슬픔이 와서 하는 일이란 겨우
울음에서 소리를 훔쳐내는 일

슬픔은 무엇인가요? 안쪽으로부터의 통증. 먼 곳에서부터 스며든 습기. 
젖고 난 뒤 시들 때까지 습기를 놓치지 않는 것. 날뛰는 분노를 이기는 힘.
울음이 슬픔의 목을 꽉 눌러 터뜨렸다면 울음은 사라졌을 거예요. 
울음이 덮치기 직전 슬픔은 빠져나가요. 슬픔은 도적이에요. 
모르게 오고 모르게 가요. 아니 간 줄 알았는데 계속 있어요.
깨질 듯 오래 웃고 난 다음에 자신을 까맣게 잊은 줄도 모르고 있던 황혼에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곳에 슬픔은 눈에 비친 것보다 늘 가까이 있어요.

내 눈에 비친 것은 내가 들여다보는 거울이에요.
그러니 내 다른 얼굴인 줄 모르고 그렇게 모질게 하지 말아요.
서로서로는 울음과 슬픔처럼, 눈에 비친 것보다 더 가까이 있어요. 


*이원의 <시를 위한 사전>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