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708화 세상 귀퉁이를 만지작거리다 오는 게 소풍의 맛!
그대아침
2025.07.08
조회 236
새해 첫날엔 수첩을 펼쳐 그해 소망이나 계획을 끼적여보는데,
몇해 전 그날도 그랬습니다. 한 해 동안 무엇을 많이 해야 행복할까 생각하다 불현 듯 
'소풍'이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새삼 두근거리더군요. 
그해에 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드디어 소풍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놀랍게도 저는 단 한번의 소풍도가지 못했습니다. 말하고 나니 서글프네요.
무엇이 저의 소풍을 막은 걸까요? 시간이 없었을까요, 갈 마음이 없었을까요?
강연이나 북토크에 참여하기 위해 종종 서울을 벗어나지만 그것을 소풍이라 할 순 없지요.
제주도나 해외로 여러날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지만 그 역시 소풍은 아닙니다.

소풍은 여행보다 가볍고, 마실보다 무겁습니다. 외출은 외출이지만 목적이 있는 외출은 아니지요.
여행이 휴가를 얻어 일정을 짜고 먼 곳으로 다녀오는 '사건'이라면, 소풍은 '느슨한 일상'입니다.
풍선 같은 걸음으로 나가서 휘파람을 불며 돌아오는 게 소풍입니다.
여행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라면 소풍은 한자리에 머무는 일입니다.
여행이후유증과 추억, 피로나 여흥을 남긴다면 소풍은 별다른 것을 남기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바람 냄새 정도를 머리카락에 묻혀올까요?
소풍은 쉬었다는 기억을 남깁니다.

어떻게 이름도 '소풍'일까요? 한자를 찾아보니 '노닐 소'에 '바람 풍'자를 쓰는군요.
바람처럼 하릴없이 이곳저곳을 노닐다 돌아오는 일이 소풍이겠지요.
사전에서 풀이하는 의미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야외에 나갔다 오는 일”이고요.
역시 휴식입니다. 여행을 떠날 때는 새로운 것을 보고 겪으며,
들인 돈만큼 왠지 본전을 뽑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소풍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무언가를 얻으려고 소풍을 가는 사람은 없잖아요. 지문을 남기지 않는 바람의 손처럼,
세상 귀퉁이를 만지작거리다 오는 게 소풍의 맛이겠지요.
그러니 당신께 부탁합니다. 소풍을 가세요. 시간을 내서 자주 다녀오세요.
김밥을 싸들고 가 빈 도시락통을 들고 돌아오세요. 기대 없이 갔다가
뜻밖의 행복한 기운을 몸에 담고 돌아오세요. 아아, 생각만 해도 좋네요.
올해가 반이나 지났지만, 저는 다시 소풍을 자주 가겠다고 계획합니다. 
두 달에 한 번은 훌쩍, 소풍을 다녀올 거예요. 나를 놓고 나를 잊으며 
나로 가득한 소풍을 할 수 없다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박연준의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