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후회가 늘어간다. 후회가 되지 않는 순간이 없을 정도로.
완전하지도, 온전하지도 못했던 시간 속에 나를 괴롭히는 시간이 늘어갔다.
깨끗하지 않은 그릇에 담긴 물과 같이, 내 마음도 점점 탁해져만 갔다.
결국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들었고,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지도 못했다.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얄팍해지는 인간관계 속에서 나는 결국 주저앉아 울게 되는 날이 많았다.
좋은 사람도, 좋은 친구도, 좋은 딸도, 좋은 연인도 될 수 없음을 알았을 때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을 여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내 자신을 괴롭히는 '꼰대'가 되어 갔다.
점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됐다.
그렇게 보고 믿게 된 것들은 단단한 마음의 벽을 만들었다.
마음의 벽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마음에 모서리가 생겼다.
날카로워진 마음의 모서리는 수많은 변명을 만들어 냈다.
'나는 잘하고 싶었는데, 그 친구가...', '나는 잘 지내고 싶었는데,
그 사람이...' 늘어나는 변명만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이 많아졌다.
내가 가진 문제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자 인생 자체가 통제 불능 상태가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문제들은 쌓여갔지만, 풀고자 하는 의욕도 생각도 없었다.
그렇게 눈덩이처럼 불어난 문제들은 결국 내 스스로를 슬럼프의 늪 속으로 던져 버렸다.
생각보다 답은 간단했다. 문제는 나였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보여 주는 건 그가 처한 상황들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보기보다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나아가느냐를 말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슬럼프에 빠진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는 건 쉽지만, 삶을 위태롭게 만들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문제점을 내 안에서 찾는 것에서 출발한다면,
삶이 나를 제아무리 흔들어 대도 버틸 수 있는 마음의 식스팩을 얻을 수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운동을 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처럼,
나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은,
운동만큼이나 우리의 마음을 단단하게, 유연하게, 윤택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희망해 본다. 그런 마음이 쌓여 어제의 시간을, 그리고 오늘의 시간을,
내일의 시간을 후회로 물들이지 않기를.
뚜벅뚜벅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서은의 <계절의 위로>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