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624화 서로 신나게 대화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요
그대아침
2025.06.24
조회 208

"엄마 나 오늘 신촌에서 스터디 있어서 갔다가 끝나고
집 근처 스타벅스에서 친구 잠깐 만나서 커피 마시고 올게!"
"응?"

내가 말을 하면 엄마는 대답을 갸우뚱으로 한다. 엄마는 자주 나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집을 나설 때 어딜 가냐 물어오면 그래서 나는 매번 이렇게 답했다.
"서울 가요." 그래야 겨우 이해를 했다. 두 줄짜리 문장은 
한 줄로, 한 줄의 문장은 다시 한 단어로 줄어들었다.
신촌, 강남, 종로는 다 뭉뚱그려 서울로 말해야 했다.
엄마가 무언가를 물어오면 나는 자주 이렇게 답하곤 했다. "응. 그런 게 있어 엄마."

내가 말을 배울 때 나는 엄마에게 자꾸 물었을 것이다. 엄마 이건 뭐야? 
엄마 이건 왜 그래? 시간이 흐르고 딸의 언어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너무 많아져 버렸다. 질문의 주체가 바뀌었고 자식의 단어는 늘었다.
엄마는 그런 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게 많지만 자꾸 묻는 게
어쩐지 민망하기도 하다. 모르는 게 부끄럽고 묻는 게 더 부끄러운 나이 같다.

체기를 이해로 내려본다. 누구에게나 영역은 있다.
잘하는 것, 잘 아는 것, 못 하는 것, 못 알아듣는 것.
나도 아빠가 공사현장에서 쓰는 단어들을 말하면 못 알아듣듯이,
엄마가 나보다 시장물가를 그 어떤 경제지표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듯이 말이다.
엄마가 나에게 길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분야는
오늘의 반찬과 내일의 날씨, 집 근처 시장물가라서 이제 결혼을 한 나는 
엄마와 좀 더 신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았다.

"엄마. 오늘 저녁엔 뭐 해 먹을거야?"
"생태 한 마리 사왔지. 찌개 해 먹을라고."
"나도 생태찌개 해 먹어야겠다! 엄마 생태찌개에는 뭐 넣어?"
"아이고 내가 못 살아. 그것도 모르냐? 무도 사야 돼! 두부도 사고, 
쑥갓 들어가면 더 맛있지! 그리고 생태 끓일 때...."

엄마의 말이 길어진다. 엄마가 담당하는 대화의 영역.
나는 그동안 그 영역을 몰라 대화하지 못했을 뿐이다.
갸우뚱거리지 않는 엄마의 정확한 대답이 들려온다.
이제 먹을거리와 날씨는 꼭 엄마에게 먼저 물어봐야지.
엄마의 말에서 오늘의 반찬을 내일의 옷차림을 준비할 수 있으니
그렇게 엄마와 그 영역에서 오래오래 대화하기로 한다.

*임희정의 <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