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그날 몫의 공부를 다 하면 부모님 몰래 만화책을 보거나
사고 싶었던 '코디 스티커'를 샀다. 고교 시절에는 몇 날 며칠을 지새워
시험 기간을 마치면 친구들과 우리 집에 모여 서툰 손으로 화장을 했다.
그래 봤자 싸구려 파우더에 립밤 정도였지만, 한껏 단장하고 나가 쫄면을 먹고
8천 원짜리 노래방에 가고 스티커 사진을 찍으면 그 찰나의 일탈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건너온 시간이 고단할수록 해방감은 배가 됐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나는 거창한 목표 의식보다는 그 쾌감을 동력 삼아 공부했다.
어려운 긴 구간을 통과해야 할 때면 구간을 나눠 포상을 준다. 가령 최근
몇 달은 각종 마감이 몰려 혼돈 그 자체였다. 달력만 봐도 숨이 턱하고 막혀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 각각의 마감일 위에 작은 사치를 더하는 것.
강의를 마치고 온 날 저녁엔 뭘 먹어야지. 발표를 마친 날에는 영화관에 가야겠다.
혼자 아웃렛에 가야지. 이렇게 구획을 나눠 '사소한 기대'들을 심다 보면
마침내 끝은 있었다.
끝은 있다. 삶 자체가 그렇듯, 이 구간도 그러하다. 막막한 '덩어리'들을 풀어헤쳐
스스로를 야무지게 격려하고 포상하다 보면 영원할 것만 같던 시기도 지나 있을 뿐더러,
최소 그 절반은 긴장이나 걱정, 두려움 대신 설렘과 기대로 채워지게 된다.
때론 아득한 숲을 보는 것보다 당장 눈앞의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할 때가 있다. 어차피 삶은 '퀘스트'의 연속이고 지금 이 걱정이 끝나도
다른 걱정이 올 것은 자명하니, 그 늪에 빠져 허우적댈 바엔
차라리 행복한 하루살이가 되기를 택하겠다.
당장 내년, 5년, 10년 뒤의 내가 어디서 어떻게 밥벌이를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신한다. 기대될 것 없는 하루의 끝, 맛있는 저녁을 먹고,
어려운 일을 마친 날 혼자 영화관을 찾을 것이다. 그 '어려운 일'이 당장의 업무일지,
육아의 고민일지, 삶의 고뇌일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그 순간들만큼은 작고 잦게 행복할 것이라는 것.
덩어리진 불안을 풀어헤쳐 그 구간마다 스스로를 살뜰히 포상하기를 바란다.
그저 견디기만 하기엔 아직 너무 많고 귀한 '하루'들이 남았다.
*김지영의 <느슨하게 부지런한 행복>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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