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122목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는 일, 그것이 삶의 낙이 될 수도
그대아침
2026.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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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도 요즘 들어 차츰 세대교체를 하고 있다.
중·장년층의 세 세대가 터전을 새로 닦은 데 이어 청년 가구가 하나 들어섰다.
외지고 한적한 시골의 작은 토박이 마을로서는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어중간하게 서울살이 등지고는 느닷없이 끼어들어 어느 샌가 서툰 토박이 행세를
하게 된 나로서는 여간 반갑고도 고마운 게 아니다. 이것도 요즘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귀농 현상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마을의 새 식구들이 경운기까지 동원해서는 
농사 짓기에 대단히 열을 올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몇 분 안되는 토박이 노인네들은
더한층 기가 죽은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귀농한 사람들이 부지런히 갈고 닦아놓은 밭과는 대조적으로 노인네의 밭들은 헐어져 가는 듯이 보인다.
모두 하나같이 일흔 넘고 여든 넘은 할머니들의 밭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애써 키운 자식들은 모두 도회지로 떠난 데다 지아비마저 일찍 여읜 탓에 할머니들은
홀로 삶을 가꾸고 있다. 무엇보다 혼자 밭갈이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산다는 것이 외로운 데다 힘겹다. 삶이 너무나 벅찬 짐이다.
그것을 혼자 등짐 지듯 맡아내자니 등이 휘고 허리가 굽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용케 견뎌내고 있다. 아니, 이겨내고 있다.

그것을 나는 어느 날 뒷산 자락의 밭에서 보았다.
산책을 나가서는 밭 사이로 굽이져 나 있는 비탈길을 터벅거리며 걷고 있는데,
저만큼 밭 가운데서 누군가가 꼬부리고 앉아서는 일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려니 하고 가까이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웃 할머니였다.
쪼그리고 앉아서는 취나물 밭에서 호미질로 잡초를 뽑고 있었다.
이른 가을 이른 저녁 무렵의 햇살이 온몸을 내리쬐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머리에 쓴 흰 수건에도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고되 보이기에 가까이 가서 말을 건넸다.
"더운데 웬 밭일은요?"
할머니는 슬쩍 쳐다보면서 한숨짓듯 한마디 했다. 
"이거 낙 아인기요." 

할머니는 그 말을 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호미질을 계속했다. 
나는 마치 다짐 두듯이, “이거 낙 아인기요.”를 연신 입으로 중얼대면서 
집으로 오는 걸음을 재촉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는
스스로의 낙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김열규의 <아흔 즈음에>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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