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217수 우리가 하는 일이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 될 수 있다는
그대아침
2025.12.17
조회 103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함민복, 「긍정적인 밥」,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 1996

[긍정적인 밥]은 아름다운 시다. 
시 한 편의 고료로 삼만 원은 정당한가, 혹은 시집 한 권의 값이 삼천 원이라는 게 정당한가라는 
이 질박한 물음 속에서 시 한편, 혹은 시 묶음의 효용가치를 국밥이나 굵은 소금 한 됫박에 견주면서
어떤 진정성을 구한다. 시쓰기도 노동이라는 총체에 포섭되는, 노동의 일부다.
근육의 운동이 필요없는 조금 느린 템포의 노동이다. 밥은 함민복 시의 중요한 화두다.
밥은 개별자의 생존을 위해 불가결한 것이다.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고, 입에 들어갈 밥을 구하려면
일을 해야 한다. 한 사람의 윤리의식은 대개는 밥을 구하는 노동의 정당성이 그 기초를 이룬다.
 
시인은 그 착한 심성으로 시를 써서 밥을 구하는 제 삶을 지긋이 들여다본다.
시 한 편을 써서 버는 돈은 삼만 원인데, 시 한 편에 들인 공력을 생각해 보면 억울하다고 적는
시인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하는 것은 그게 그대로 시인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까닭이다.
시집 한 권이 팔리면 시인에게 돌아오는 저작료는 시집 정가의 십분의 일이다.
굵은 소금 한 됫박과 바꿀 수 있는 돈이다. 시 한 편을 써서 받는 삼만 원은 쌀 두 말 값이고,
쌀 두 말은 서너 식구가 한 달은 먹을 수 있는 양식이다. 뒤집어서 시 한 편이 서너 식구의
한 달 양식이 될 수 있을까에 생각이 미치면, 시인은 시집 한 권의 저작권료와 시 한 편의 고료가
너무 박하다고 생각하다가 얼른 그 생각을 고쳐먹는다.

*장석주의 <오늘, 명랑하거나 우울하거나>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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