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212금 예술이 뭐 별것인가, 삶 속에 어우러져 숨 고르게 해주는 걸지도
그대아침
20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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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선배가 전시 오픈을 하는 날이다. 갤러리 주소가 '창신동'이었는데 처음 가는 곳이다.
동대문 지하철역에 내려 지하도에서 올라오자 차와 오토바이 소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창신동은 동대문 의류 상가에 각종 제품들을 납품하는 봉제 공장이 밀집해있는 지역이다.
마치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내린 듯, 골목길 주변의 소규모 공장들과 상가들은
80년대 거리를 연상시켰다. 미용실, 전파사, 여행사, 중국집, 떡집과 구멍가게들... 
건물마다 전등 불빛과 왁자지껄한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선배의 작업은 손뜨개질로 3차원의 공간에 드로잉을 하는, 이른바 설치미술이다.
수많은 털실 가닥이 그물코를 만들어 성긴 그물망들을 이루고 시들어버린 화분과
빈 병을 감싼다. 전시는 차고 갤러리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선배는 2층 봉제 공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 나무 손잡이에 뜨개질한 옷을 입혔다.
백반을 쟁반째 머리에 이고 온 식당 아주머니가 계단을 오른다.
아주머니는 잠시 난간 손잡이를 한 손으로 짚고서 숨을 고른다.
그러곤 '영차!' 다시 힘을 내서 계단을 마저 올라간다.
그 바람에 예쁘게 잘 입혀두었던 선배의 손잡이 옷이 조금 비틀어졌다.
식당 아주머니에게는 선배의 작품이 잠시 기댈 수 있는 털실 손잡이 난간일 뿐이다.
선배 반응이 더 재밌다. 창신동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대하는 그런 태도가 좋다고 했다.
'예술이 뭐 별것인가.'

전시 제목이 왜 '부드러운 가시'일까 생각해봤다. 가시는 식물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란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지만 결코 타인을 다치게 하려는 건 아니다.
선배는 오히려 다치기 쉬운 연약한 가시들을 부드러운 털실로 감싸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선배의 작업처럼 설치미술 전시는 지원금이 없이는 하기 어렵다. 전시 지원이 있다면
선배가 더 규모 있는 전시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크고 거창한 전시만이 좋은 건 아니다.
이 외지고 작은 전시가 나를 비롯해 작가를 아는 지인들에게 충만한 기쁨이
될 수 있었으니까. 
창신동 언덕길을 그동안 함께 그림책을 만든 편집자와 디자이너와 걸어 내려왔다.
지나치는 풍경들이 무대 위의 세트들처럼 아기자기했다. 활기찬 창신동 거리가
선배의 전시와 같이 어우러지니, 하나의 뮤지컬 공연처럼 느껴졌다. 

*소윤경의 <호두나무 작업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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