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126수 아이들은 백 가지의 언어, 백 가지의 생각을 갖고 태어났다
그대아침
2025.11.26
조회 104

"어젯밤에 유치원 친구들이랑 노는 꿈 꿨어."
"매일 만나는 친구랑 꿈에서도 놀았어? 그렇게 놀고 싶어?"
"응. 매일 놀아도 또 놀고 싶어." 
유치원 졸업식 날 아침이었다. 그것도 중요한 통과의례이니 축하의 뜻은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길동 할아버지·할머니가 졸업식에 참석한다고 하고,
또 조부모는 한 가족으로 제한한다니, 전화로 축하할 수밖에 없었다.

"유치원 졸업을 축하해,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하는 주원이를 열심히 응원할게."
아이는 좋다, 나쁘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영상통화 화면에서 슬그머니
나가 버렸다. 그렇게 설레던 초등학교 진학이었지만, 아이는 언젠가부터 기대감도 설렘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 엄마 이야기로는 아이는 졸업식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거의 웃질
않더란다. 헤어지는 게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그랬을까. 

유치원으로 올라가는 2층 계단 중간엔 이런 글이 커다란 도화지에 적혀 있다. 
레지오 에밀리아 교육의 창시자인 로리스 말라구치의 철학과 신념을 요약한 내용이다.
‘어린이는 가지고 있습니다.
백 가지의 언어, 백 개의 손, 백 가지의 생각,
백 가지의 생각하는 방법, 놀이하는 방법, 말하는 방법을.
백 가지의 귀 기울여 듣고, 감탄하고, 사랑하는 방법,
발견해 나갈 백 가지 세상, 고안해 낼 백 가지 세상, 꿈꾸는 백 가지 세상을.
어린이는 백 가지의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아흔아홉 가지는 훔쳐가 버립니다.
사람들은 어린이에게 말하기를,
손을 써서 생각하지 말라, 머리를 써서 생각하지 말라,
듣기만 하고 말은 하지 말라, 기쁨은 느끼지 말고 이해만 해라
또 사람들은 어린이에게 말하기를, 작업과 놀이,
현실과 환상, 과학과 상상, 하늘과 땅,
논리와 꿈들은 같이 섞여질 수 없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이들에게는 백 가지가 없다.
하지만 어린이는 말합니다. 천만에요, 우리에겐 백 가지가 있어요.’

그렇다. 아이들은 행복해질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 신비한 능력을 어른들이 아이를 가르친다면서 하나둘 없애 버린다.
예민한 감각을 무디게 하고, 열렬한 호기심을 냉동시키고, 공감과 상상력을 지워 버리고,
꿈과 소망을 차근차근 없애 버린다. 아이들이 저마다 아름다운 나무로 자라
숲이 되도록 하지 않고, 모든 아이를 벌목해서 쓸 재목으로 똑같이 키우려 한다.
유치원 입구 다른 벽면엔 이런 글과 그림이 걸려 있었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라." 
할아버지가 꼭 하고 싶은 말이다.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아이야, 네가 아름다워지면 세상도 아름다워진단다.
아름답게만 커다오. 우리도 노력할게."

*곽병찬의 <천진의 시간>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