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기는 건반 악기와 달리 시각적으로 음계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첼로를 배우기 전에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문제인데 막상 배우기 시작하고 보니 당황스러웠다.
표시가 전혀 없는데 어디가 ‘도’이고 어디가 ‘레’인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래서 초보자들 악기에는 테이프를 붙여 음계자리를 표시한다.
그리고 연습할 때마다 그 테이프 붙은 부분을 눈으로 확인하려니
상체를 자꾸 앞으로 굽히게 되어 자세도 나빠지고 목, 어깨도 많이 아팠다.
나는 그때까진 테이프를 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제 겨우 1, 2년 했는데
아직은 붙이고 있어도 되지 뭐.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영원토록 붙이고 있을 생각도 아니었다. 언제 떼어내긴 하겠지만,
그 ‘언젠가’는 아직 한참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제주에서 올라와 잠시 육지에서 두어 달 지내게 됐을 땐
첼로 운반이 너무 번거로워 악기를 대여하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신청을 해두고 약속된 시간에 준비된 악기를 받으러 가기만 하면 된다.
감사한 마음으로 악기를 받아 집에 가져왔는데 그 악기에는 테이프가 붙어 있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수영 초급반이 킥판을, 이제 막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
보조바퀴를 예고 없이 빼앗기는 것과도 같은 막막함이었다.
연주가 가능하기나 할까 생각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일단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연주를 시작하자 내 손가락이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첼로에 음계 표시는 없지만 첫 번째 음정만 제대로 잡으면
그다음부터는 일정한 손가락의 간격으로 다음 음정을 잡을 수 있었다.
자전거를 배울 때도 언젠가는 보조 바퀴를 떼고 뒤에서 잡아주던 사람이
나를 놓아 보내는 순간이 필요하다. 끔찍하게 무서운 순간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미 한참 전부터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혼자 비상하는 순간, 혹시라도 추락할까 봐 두려울 뿐. 하지만 그러면 또 뭐 어떠랴.
다시 일어나면 되지. 몇 번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는 것이 평생 무거운 보조바퀴를
질질질 끌고 다니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오래 매달려 있지는 말자.
내가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누가 주려고 하겠는가.
*김현수의 <이 나이에 기어이 첼로를 하겠다고>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