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라는 그림을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처음 봤을 땐 얼핏 너무 단순하다 싶었어요.
단지 앙상한 나무 몇 그루와 초라한 집 한 채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그림이 그려진 배경을 알고 나니 그림이 달리 보이게 되더라고요.
<세한도>를 그릴 당시 김정희는 당쟁에 휘말려 멀리 제주도에 홀로 유배되어 있었습니다.
오랜 유배 생활로 친구들과 연락은 점점 끊겼고,
변함없이 안부를 묻는 건 오직 제자 이상적뿐이었습니다.
그는 역관 출신이어서 중국에 자주 다녀왔는데, 그때마다 귀한 책을 구해
편지와 함께 스승에게 부쳤습니다. 자기 출세나 부귀영화를 위해 쓸 수도 있는
귀한 물건을 유배된 채 세상에서 잊힌 옛 스승을 위해 보낸 것입니다.
이상적의 편지와 선물을 받으며, 김정희는 제주의 매서운 바닷바람도 물리치는 뭉근한 온기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변함없는 그의 모습을 생각하며 <논어> ‘자한’ 편의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안다.
<세한도>는 바로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변함없이 자신을 대해준 이상적에게 건네는,
가진 것이라고는 종이와 붓 한자루뿐인 김정희의 진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는 '장무상망(長相)'이라 쓰인 도장이 찍혀 있는데,
바로 “오래도록 잊지 말자”라는 뜻입니다. 인생의 춥고 시린 겨울 같은 나날에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곁에 있어준 이상적에 대한 김정희의 마음, 그 따스한 온기가 느껴집니다.
어쩌면 김정희는 유배 생활이라는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었기에
이상적의 변함없는 마음을 더 절실히 느끼고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혹독한 겨울이 있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맞잡고 체온을 나누는 일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분명히 우리 인생 앞에는 늘 좋은 일만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더 많지요.
하지만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작은 사랑과 희망의 씨앗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작지만 따스한 온기를 발견해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잘 견뎌내다 보면,
언젠가 슬그머니 다시 찾아온 따스한 봄날과 마주하게 될 테니까요.
*전승환의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