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결혼기념일은 가을 초입인데 남편은 고맙게도 매해 내게 꽃을 사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작약이지만 가을이 철이 아닌 것을 잘 안다.
몇 해는 감사히 받았지만 구하기 힘든 줄 아니 이제 다른 것을 사주어도 괜찮다고 얘기했더랬다.
그런데도 남편은 좋아하는 것을 사주고 싶어 매년 어찌어찌 작약을 구해 돌아온다.
철이 아닌 때 비싼 꽃을 찾는 남편을 보며 단골 꽃집 언니도 참 애가 탔나 보다.
5월 로즈 데이에 꽃집에 갔더니 지금이 바로 작약 철이라며
장미 대신 나 좋아하는 작약을 선물하라고 했단다.
남편은 작약을 들고 퇴근을 했고 덕분에 나는 내가 본 중 가장 아름다운 꽃다발을 받았다.
싱싱한 제철 과일을 사 먹는 것처럼 제철 아름다운 꽃을 집에 들이며 산다.
어느 계절에나 꽃은 곱지만 봄의 꽃은 유난하다.
꽃을 사 오면 큰 키를 자르지 않고 우선 그대로 본다.
손님에게 내기 전 다듬는 과정에서도 키를 잘라내지 않은 꽃이 있다면,
그 꽃은 농장에서부터 잘 키워 싱싱하게 데려왔다는 뜻이라고 꽃집 언니가 가르쳐 주었다.
그런 것을 집에 데려왔다고 내 꽃병에 맞춰 댕강 잘라내기는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삼천 원어치를 사도 오천 원어치를 사도 꽃집 언니는 내가 고른 꽃에
어울릴만한 초록 소재를 하나 골라 엮고 꼭 예쁜 리본을 매어 안겨준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내 마음에도 예쁜 리본이 묶어져 꽃집 문을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모든 것들이 선물이 되는 기분이 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들 때,
오늘의 나를 기쁘게 만들어주었던 사소한 일을 떠올려본다.
나도 누군가에게 예쁜 리본을 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기쁜 마음으로 데려온 꽃으로 봄의 집 안 곳곳을 꾸민다.
매일 매일 깨끗하고 차가운 새 물을 갈아주며 줄기의 끝을 조금씩 다듬는 아침의 일까지도 즐겁다.
꽃이 천천히 부피를 줄이기 시작하면 작은 것으로 병을 옮기고
한 곳에만 두지 않고 부지런히 자리도 바꿔가며 본다.
사소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일이다.
*김수경의 <우리 집으로 만들어갑니다>에서 따온 글.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