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908월 '나는 기꺼이 당신의 침묵을 듣겠습니다'
그대아침
202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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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오는 시간. 안미선 작가가 오랜 시간 여러 여성을 인터뷰하며
말들이 오가는 자리를 기록한 <당신의 말을 내가 들었다>에는 침묵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작가 역시 침묵 앞에서 당황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오랜 경험으로 체득한 침묵 듣는 법을 알려준다.
침묵의 순간은 눈물이 흐르는 순간처럼 때를 알 수 없으며, 이유가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작은 움직임과 표정의 변화, 손가락의 떨림을 통해 다가온 그 순간에
기꺼이 귀를 기울일 뿐이라고 한다.

나는 침묵이 두려웠다. 침묵은 상대가 나를 지루하게 여긴다는 증거,
나의 말에 흥미가 없다는 증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더 침묵을 깨고 싶었다.
그런 나를 작가의 말이 두드린다.
“그래서 나는 매끄러운 말들이 갑자기 길을 잃는 순간,
서슴없는 서사가 찢기는 순간, 갑자기 우리를 불안에 몰아넣는 
그 침묵을 기다린다. 그녀가 성큼성큼 기억의 계단으로 내려가 말할 수 
있기를, 그녀만이 알고 있는 진심의 자리에 초대받기를 바란다.” 

작가는 침묵 뒤에 서서히 고개를 드는 어떤 진심을 기다린다.
침묵을 이야기 없음의 상태가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로 듣는다.
침묵을 듣는 일은 침묵이 깨질 다가올 순간 역시 듣고 있는 상태이다.

불안정하고 불안하다고만 여겨왔던 침묵을 다시 생각한다.
침묵은 여러 가지 메시지를 품고 있다. 이미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당신이 못 듣고 있어서 힘들다는 서운함의 표현이기도,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며 뱉는 신음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갇혀 있어서 진공 상태에 있다가 무언가 서서히 열리며 피어오르는 불씨이기도,
당신과 이 공간이 이야기를 꺼내기 믿을 만한 곳인지 가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요청이기도 하다.
침묵을 불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는 것만으로도 불안은 희미해진다.

오랜만에 수업을 진행하기 전에 이전에 썼던 수업 자료를 다듬다가
합평 방식에서 빠진 항목을 발견한다. '꼭 말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 문장을 마지막 항목에 힘주어 적는다. 투명한 괄호에 문장의 의미를 적는다.
'나는 기꺼이 당신의 침묵을 듣겠습니다.’

*홍승은의 <숨은말 찾기>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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