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6목 발 담그고 시원해질 기대로 오아시스를 향해 달려
그대아침
202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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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다리로 연결되는 8차선 대로가 어쩐 일로 한가했습니다.
텅 빈 도로 저 끝,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며 피어오르고 그 너머로 물빛 오아시스가 보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서울의 도심 한복판. 오아시스가 있을 리 없으니, 
아마도 살수차가 물청소를 하고 지나간 모양입니다.
신호가 바뀌고 방금 전 오아시스가 보이던 자리를 지났습니다. 
도로 위에 물기라곤 보이지 않았습니다. 방금 전에 본 것은 그러니까,
신기루.
뜨거운 여름 태양이 달구어놓은 도로가 토해놓은 더운 공기 사이를 
빛이 이리저리 굴절하며 통과하느라 생긴 착시현상이었습니다.

신기루를 보았습니다. "신기루를 보았다." 참 이상한 말입니다.
신기루란, 실제로는 없는 것. 없는 것을 보았다니 이상한 말일 수밖에요.
그러나 방금 전에 분명히 그것을 보았고 그것은 실제로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도 사막에 가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이런 느낌이겠지요.
발아래 모래는 데일 듯이 뜨겁고 여기에서 주저앉으면
몸도 마음도 모래가 되어 흩어질 것처럼 지칠 때,
저 멀리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오아시스가 보입니다.
야자수 그늘 아래 시원한 오아시스에 발을 담그고 시원해질 기대 덕에
그곳까지 달려갈 기운이 생깁니다.

목마른 사람이 물, 야자나무, 그늘을 본다고 상상합니다.
믿을 만한 증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믿어야 하는 간절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내가 바라는 모습 그대로의 환각. 
그러나 비록 환각일지언정, 그 힘으로 사막을 건널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오아시스입니다.
우리에게 꿈이 그렇고, 사랑이 그렇고, 예술이 그렇습니다. 


*유선경의 <소심해서 그렇습니다>에서 따온 글.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