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누가 봐도 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엘리트인 그가 상담 중에 자주
입에 올리는 단어였다. 존재감이란 실은 존재감이 없는,
즉 '느껴지지 않는' 존재가 존재해야 비로소 존재 이유가 생기는 단어다.
어딜 봐도 너무 존재가 느껴지는 그가 자신의 존재감을 그렇게까지 늘상 불안해하는 것은
존재감이라는 단어의 아이러니와도 흡사했다.
회사에서 팀원들과 사이좋게 지낸 얘기를 하며 표정이 밝다가도
'핵심부서'나 '라인'에 갑자기 촉각을 세웠고, 최고가 되고 싶진 않지만
주류에 끼고 싶다고 했다. 업무 회의에서 두드러진 발언을 한 사람과
그 말들을 오랫동안 생각하며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일란성 쌍둥이 중 형보다 몇 분 늦게 태어난 동생이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쌍둥이로 품고 있다가 낳고 보니
먼저 나온 놈보다 약해서 늘 걱정이 되었던 둘째,
그는 엄마 품에서 떨어지길 어려워했고 엄마도 걱정을 쉽사리 놓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늘 형에게 동생 챙기기를 부탁했고, 동생은 언제나 형을 쫓아다니기 바빴다.
그는 결국 튼튼해지고 공부를 잘하게 되고 자기 친구들을 만들면서
별책부록 같은 존재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견뎌야 했던 외로움과 갈등과 노력의 시간은 그 마음
저 아래에 녹지 않은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었나보다.
고개를 떨군 채 머뭇머뭇 어렵게 말하는 그는 형을 쫓아다니던 아이의 등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 등을 가만히 쓸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왜 그렇게 다른 사람의 존재감에 위협을 느끼고 나의 존재감을 불안해할까.
그 질문에 그는 이렇게나 진솔한 답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여
조심조심 꺼내 자신도 보고 나에게도 보여주었다.
그 용기 있는 시간을 지나고 나서 다음 번에 만난 그는
외국에 사는 그의 쌍둥이 형에게 전화를 걸어
오랜만에 아주 긴 얘기를 나눴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 얘기를 하던 그의 아이와 같이 반짝이는,
자기 말을 알아듣는 사람에게 보내는 신뢰의 눈빛은 참 따뜻했다.
*박혜연의 <맺힌 말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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