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의 영화음악

음악FM 매일 11:00-12:00
책선물(3/31~)
2014.03.30
조회 783
# 창비세계문학 제공, D.H.로런스 소설집 <패니와 애니> 책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D. H. 로런스

서구문명을 비판한 그의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대표 단편선

『패니와 애니』는 초기작부터 원숙기의 작품들까지 로런스의 다양한 작품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빼어난 단편들을 묶은 선집이다.

로런스의 출세작으로 그의 천재를 여실하게 드러낸 「국화 냄새」는 한 여인이 탄갱 사고로 급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하룻밤의 사건을 다룬다. 남편의 주검을 마주한 여인의 내면을 통해 죽음의 절대성과 개인의 고독 등을 심도 있게 다루면서도 계급적 현실을 녹여내 일찌감치 작가로서 그의 재능을 확인시켜준 작품이다.

남녀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인습과 편견에 대한 비판과 계급의식을 제기하는 「목사의 딸들」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 「패니와 애니」에서는 작가가 성장한 탄광촌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사실주의 전통에 뿌리박은 로런스 문학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목사의 딸들」은 린들리 목사의 집안의 두 딸, 사회적 지위를 얻고자 사랑과 육체를 부정하는 선택을 한 큰딸과 계급적 편견에 굴하지 않고 광부와의 결혼을 택한 작은딸의 행로를 대비하여 풀어낸 작품이다.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도 출생배경이 다른 두 남녀가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 작품에선 남녀의 감정과 관계 변화를 좀더 경쾌하고 미묘하게 그리고 있어 보는 이에 따라 각기 다른 재미를 찾을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패니와 애니」 역시 도시생활을 접고 내려온 여성이 야심이라곤 전혀 없는 평범한 노동자인 첫사랑과 결혼을 앞둔 상황을 그리는데, 여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탄광 마을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들 단편은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의표를 찌르는 전개와 희극적 요소가 더해져 로런스가 젊은이들에게 꾸준히 대중적인 인기를 누려온 까닭을 잘 보여준다.

「프로이센 장교」 「눈먼 남자」 「해」 같은 작품들은 로런스가 당대의 모더니즘 작가들 못지않게 전위적 기법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과감한 문제의식을 지녔음을 말해준다. 그의 작품세계가 익히 알려진 것보다 훨씬 풍성한 주제와 기법을 모색했으며, 그럼에도 기법상의 세련됨을 추구하는 데 머물지 않고 노동계급 특유의 건강함을 견지하며 육체와 욕망에 대한 탐구, 생태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태도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로런스의 문학적 성과와 의의가 빛을 발함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