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하셨습니다.
하늘본향
202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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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김제 작은 시골 예왕교회 목사입니다.
저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에 소속된 교회입니다. 저는 총신신대원을 졸업했구요.
2002년 250평 풀밭에 작은 1.5평에 비닐 하우스를 치고 교회를 개척해 24년 째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입니다.
많은 목사님들과 지인분들이 15년전부터 목사님은 꼭 새롭게 하소서를 나가셔서 간증을 해 주셔야 합니다라는 권고를 많이 들었지만 저에 부족함을 너무 잘 알기에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올해는 기도 중에 꼭 나가서 하나님을 높여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서 이렇게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는 처음부터 선교를 시작해서 작지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전혀 노회나 어떤 단체에서도 지원을 받지 않고 제가 2007년도에는 케냐 미카메니 지역에 선교단체를 통해서 사노벽돌로 300석의 교회를 단독으로 건축했고 성도 열두 명이서 . 2005년도에는 비닐 하우스가 너무 더워서 어려운 가운데 6평형 벽걸이 에어컨을 중고로 대당 12만원에 두대를 구입했는데 설치를 하려고 기사를 부르니 대 당 설치 비가 15만 원 두대 30만 원을 요구해서. 당시 교회에 재정이 어려워서 그해 여름 에어컨만 바라보며 지냈습니다. 다음 해 여름 기사를 불러서 한 대만 설치해 주실 것을 요청 드리고 옆에서 간절한 심정으로 지켜 보고. 한 대 남은 것을 직접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에어컨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서 혼자 터득한 에어컨 설치 기술은 2007년도에 진안에 있는 모 교회에 에어컨을 설치중에 그곳 목사님께서 설치 현장을 사진을 찍어 기독신문사에 제보했고 신문을 타고 소문이 확산되어 지금까지 우리교회 섬긴 전국에 에어컨만 2.000여 대가 됩니다.
사역 초기에는 연로하신 어머니. 13살 되었던 딸. 아내. 4명이서 이곳으로 왔지만 처음 개척을 하자고 제안했던 집사님은 연세가 많으신 집사님이 셨습니다.
저는 전주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고. 제안을 받고 기도원에 올라가 밤을 세워가며 제가 꼭 가야 되는 지를 하나님께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한결같이 가라는 싸인을 주셨습니다.
기거할 주거지도 없는데 당시 이 교회 부지는 문중 땅이었고. 문중에 제사를 모시는 제실이 있었는데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허름한 건물에 일단 기거하면서 사택을 짓자고 말씀하셨고. 그곳으로 이사하는데 저는 이사할 때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짐을 싣고 도착했을 때 집사님이 아닌 다른 분이 모든 경비를 준비한 것을 보고 하나님이 일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 후 그 연세 드신 집사님께서 돌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분이 저를 부르신 것은 자기 농사일에 저를 이용하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저는 기도하다가 이것은 전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고 물론 시간이 될 때는 제가 돕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단호 하게 거절하니 그분이 가라는 것입니다. 당시 이 땅은 집사님이 문중에서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구두로 구입한 땅이었습니다. 이후로 이 집사님은 교회에 나오시지도 않고 그 때부터 저는 비닐하우스 에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2개월이 지난 후 낮 시간에 교회에서 기도 소리가 들렸습니다. 조용히 들어가 보니 전혀 알지 못하는 분 부부가 오셔서 오열을 하시면서 기도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분 들이 돌아가고 나서 강단 당시 강단은 사과궤를 쌓아놓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봉투가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봉투를 열어보니 2천만원이 들어 있었어요. 그 돈으로 이 땅을 매입하고 자유스럽게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비닐 하우스에 아이를 엎고 찾아온 엄마가 있었고. 당시는 왜 그렇게도 어려운 사람들만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지 그런데 아내와 저 그리고 우리 가족은 감사가 넘쳤습니다. 제가 처음 그곳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던 것은 하나님 여기가 부흥이 될 그런 곳도 아니고 저는 주님이 여기 보내셨으니 저는 죽겠습니다. 마을 분들이 찾아와서 교회를 포크레인으로 파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바로 옆에 어르신들이 모여 막걸리를 마시는 선 술집이었는데 예배시간에 카세트를 크게 틀어놓고 예배를 방해하고 하루는 우리 가족이 저녁 식사를 때울 정도의 쌀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내와 전도를 하고 돌아 왔는데 당시는 쌀을 40키로그램씩 담았었습니다. 그 한 가마가 비닐 하우스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와 똑같이 한 말은 이 쌀은 누구 누구 집사님을 위해서 예비하신 쌀이다 하고 그 집사님집에 가져다 드리고 다시 돌아오니 한가마가 또 와 있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것을 가져다 놓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또 동시에 아내와 저는 이것은 누구누구 집사님 것이다. 하고 가져다 드리고 돌아왔을 때는 이제 쌀이 없었습니다. 저녁 어머님과 딸 우리 부부는 그 남은 쌀을 털어서 밥을 지어 먹고 잠을 잤습니다. 이제 아침은 없는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새벽 예배를 드리고 아침 식사를 할 정확한 시간에 우리 동기 목사가 이웃에서 부목사로 섬기고 있었는데 장인어른이 쌀을 가져라는 연락이 몇일 전부터 있었는데 그날 새벽에 예배를 마치고 쌀을 싣고 와서 사택 아파트에 내리려고 하는데 성령에 음성을 들었답니다. 이것은 윤석원 목사거다. 그래서 쌀을 싣고 왔습니다. 산주교회를 짓게 된 동기 CBS에서도 보도가 나갔지만 거기에는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보따리를 풀면 끝이 없습니다. 여기까지만 하고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기록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