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밟고 싶어 기도합니다.
어디를 가도 시커먼 아스팔트가 나의 어머니 대지(大地)의 자리를 대신하고,
한 날의 여유는 누렇게 깔린 잔디밭위에 놀아나고,
시멘트에 페인트 듬뿍 발라 살아있는 시늉만을 낸 것이
눈 앞에 천지로 펼쳐져 있으니 어디서 당신의 봄날을 느끼리오.
주여, 땅을 밟고 싶어 기도합니다.
청명한 호흡 하고 싶어 기도합니다.
들이마시는 것도 내 쉬는 것도 어디하나 시원하지 못한 이 공기를
당신의 호흡삼아 살아가고 있는 이 사람들이
어찌 생령이 되어 당신의 창조를 찬양하리이까
하이얀 것들은 검게 찌들어 있고
당신이 물들여 놓은 아름다운 색감은 옅은 먼지에 가리워져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지 못하오니 어디서 당신의 봄날을 느끼리오.
주여, 청명한 호흡하고 싶어 기도합니다.
맑은 물 마시고 싶어 기도합니다.
한 번 끓이고 난 물에 맛난 기분 느낄 수 없어
항아리에 담아 온갖 시늉 다 내어보아도
태생이 죽은 물인데 그걸 어떻게 살리리이까
몸에 좋다고 하는 모든 것 다 넣고 우려내어도
그 마라의 쓴물이 생수가 되리이까
두 손에 생수를 한 움큼 담아 마시고 싶으나
플라스틱에 공수된 500원짜리 물에 의지하고 있사오니 어디서 당신의 봄날을 느끼리이요.
주여, 맑은 물 마시고 싶어 기도합니다.
들풀을 보고 싶어 기도합니다.
그 어디인들 풀들이 자랄 틈이 허락되지 않는 가엾은 생존의 터
블록 사이를 비집고 나와 자신을 알리는 그 처량함을 보고
봄날은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 되묻습니다.
함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기에 당신의 민초들이 그러했듯이 모두들 뽑혀지기 마련이군요.
모두들 집 없는 서러움 모를 리 없건만 안타까움만 계속 되는 이 세상
어디서 당신의 봄날을 느끼리이요.
주여, 들풀을 보고 싶어 기도합니다.
삶(사ㄹㅁ)이 아름다워야 할 사람이
당신께 온전한 삶의 예배를 드리지 못함을 고백하오며
봄 날을 느끼며 사람답게 살고 싶은 마음에
봄 날에 부활하셔 사람들의 생의 봄 날이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새아침의 기도
3월 31일 봄을 살고 싶은 마음으로
2008.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