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119수 게으름이 아닌 느긋함으로 삶의 방식을 바꿔도 괜찮으니까
그대아침
2025.11.19
조회 149
"창밖은 오월인데 너는 미적분을 풀고 있다”는 피천득 시인의 시구처럼,
창밖엔 겨울비가 내리는데 나는 겨울잠을 잤다. 까맣고 촉촉한 겨울밤 공기에 휩싸여
<화양연화> ost라도 들었어야 하는데,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겨울비도 아닌데 아깝다.
으슬으슬 춥고 몸이 땅으로 꺼져 최대한 웅크리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
그간 애들 방학하고부터는 매일 아침 10시에 일어났는데 오늘은 눈뜨니 8시.
어제 빨리 잠들어 일찍 일어난 줄 알았다. 핸드폰이 울린다. 
이 이른 시간에 누굴까. 기획자다. 업무적인 대화를 나누고는 안쓰러운 마음에 물었다.
"마감이 급하다더니 밤샜나봐요? 아님 이렇게 일찍 출근한 거예요?"
"어? 평소처럼 9시에 출근했는데요. 지금 10시가 다 돼가는데…………."
무슨 말인가 싶어 핸드폰 시계를 보니 9시 53분이다. 안방 시계가 고장난 것이다.

게으름뱅이 신세를 들켰다. 웃기고도 민망했다. 이렇게 살아본 적이 별로 없었다.
겨울잠은커녕 사계절 부지런한 새처럼 일찍 깨어 먹이를 줍고 잠들 때까지 다람쥐처럼
쪼르르 달렸다. 영혼의 양식모으며 바삐 움직였다. 약속 시간 어기면 큰일나는 줄 알고,
주어진 일 성심껏 처리하고, 안 되면 되게 했다. 남한테 덕이 되지는 못할망정
짐이 되지 말자가 나의 생활신조였다. 그래서 사회생활이 비교적 수월했다.
그런데 내가 그렇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돌이킴의 끝에서, 삶의 속도를 생각했다.
나는 누구보다 자본의 속도에 길들여진 사람이었다.
자본의 메커니즘에서 하나의 부속으로 쉼 없이 돌아가는 똘똘이표 나사였다.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사교의 장에서도 근면 성실의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내가 삐끗하면 삶의 시스템이 멈추니까 몫을 다한 것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고작 또 다른 시시한 하루를 재생산하기 위해서였다.
야무지게 살려니 체력도 달린다. 오래된 핸드폰처럼 일 하나 처리하면
어느새 배터리가 한 칸만 남는다. 아무래도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야 할 때인가 보다.
게으름을 지혜의 알리바이로 삼지는 말되 게으름이 아닌 느긋함으로,
조급함이 아닌 경쾌함으로, 주변의 것들과 어우러지는 행복한 삶의 속도를
만들어 나가야겠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내려올 때 볼 수 있도록.

*은유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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