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031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우아한 배려
그대아침
202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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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 후 자취를 위해 급하게 구했던 고시텔의 월세는 창문이 있다는 이유로
50만 원을 훌쩍 넘었다. 너무나 낯선 곳이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게 탓이었다.
다음 학기에 살 집은 꼭 제대로 알아봐야지 다짐하며
햇빛이 겨우 드는 그 방에서 매일 밤낮이 섞인 채 지냈다.
그래도 좋았다. 서울이잖아!
마음대로 밤새 영화도 볼 수 있고, 실컷 컴퓨터도 할 수 있고,
혼자 글을 썼다 지웠다 뒹굴거릴 수 있는 생활이 좋았다.
하지만 단 하나 불편했던 걸 고르라면, 내 옆방이었다.
문제는 새벽 서너 시가 넘도록 뉴스를 틀어놓는다는 거였다.
언론고시 준비생인가? 나는 앵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목감기가 제대로 찾아왔는지 기침이 멎질 않았다.
목구멍이 간질거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자꾸 새어 나왔다.
아무리 물을 마시고 입을 닫아도 소용없었다.
밤새 기침을 해대느라 온몸이 지쳐 있던 찰나,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아, 올 게 왔구나. 나는 그간 TV 소리에 눈치를 주었던 옆방 언니의 방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사과를 할 요량으로 숨을 가다듬고 문을 조심히 열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엔 작은 반찬통과 쪽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감기에는 비타민을 잘 챙겨 먹어야 한대요.]
나는 쪽지를 보고 어리둥절했다. 방으로 들어가 작은 반찬 통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깨끗하게 씻어 칼로 꼭지까지 딴 딸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세상에.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잘 모르던 나에게, 옆방 언니의 딸기 선물은
이웃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우아한 배려였다.
딸기를 먹고 나서, 작은 초콜릿을 가득 담아 건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언니 방에서 들리던 뉴스 소리는
TV가 아니라 언니의 목소리였다. 언니는 아나운서 준비생이었다.
앵커의 목소리로 착각했던 나는, 매일 언니에게 뉴스를 보는 줄 알았다고 했다.
언니는 그 말에 몸 둘 바 모르며 칭찬 고맙다고 했다.
언니는 아나운서가 되었을까? 아니면 더 나은 다음 꿈에 도착했을까?
옆방에 사는 망나니 같은 여자애가 기침을 해대서 딸기 꼭지까지 썰었던 자신을 기억할까.
신경 써서 메모를 쓰던 자신을 기억할까. 나를 자꾸만 살고 싶게 만드는 사람 중에,
자신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전비기의 <넘어지는 기쁨>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